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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남아서 수도권으로 보내고 있는데, 반도체 공장에 전기가 부족하다고요? 이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저도 잠깐 멈췄습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정반대 주장을 내놨는데, 놀랍게도 두 주장이 동시에 맞을 수 있다는 걸 살펴보다가 깨달았습니다. 전기가 존재한다는 것과 필요한 곳에 제때 쓸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전력과 용수, 있다는 것과 쓸 수 있다는 것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반도체 공장 유치 논쟁이라고 하면 부지 확보나 세제 혜택 같은 이야기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 국정감사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느낀 건, 진짜 싸움은 전기와 물을 둘러싼 인프라 문제였다는 점입니다.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은 호남의 기저전원(基底電源)인 한빛원전의 연간 발전량이 4만 5000GWh인데, 반도체 클러스터가 필요로 하는 전력은 5만 2430GWh에 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여기서 기저전원이란 수요 변동과 관계없이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전원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항상 켜져 있는 발전소가 만들어내는 전기입니다. 원전이 대표적입니다.
반면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호남에서 평균 3~5GW의 전기가 지역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수도권으로 송전되고 있다며 반박했습니다. 심지어 전력망이 부족해 재생에너지 발전을 강제로 멈추는 출력제한(出力制限)까지 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출력제한이란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도 전력망 용량이 부족해 억지로 발전을 줄이거나 멈추는 조치를 뜻합니다. 만들어 놓고도 못 쓰는 상황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논쟁 구조는 꽤 자주 등장합니다. "있다"와 "쓸 수 있다"를 같은 말처럼 쓰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릅니다. 발전소가 전기를 만들어도 345㎸ 송전선로가 연결되지 않으면 공장 가동에 쓸 수가 없습니다. 345㎸ 지중송전사업이란 땅속에 고압 송전선로를 묻는 공사로, 지상 선로 대비 민원이 적지만 공사 기간이 훨씬 깁니다.
정부는 반도체 산단 1단계 공급선로 구축 목표를 당초 2029년 말에서 2028년으로 앞당겼습니다. 하지만 윤재옥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최근 10년간 준공된 345㎸ 지중송전사업 10건의 평균 공사기간은 착공부터 준공까지 4년 8개월이었습니다(출처: 산업통상자원부). 이 수치를 보고 저는 솔직히 2028년이라는 목표가 현실적인지 바로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부는 영광 한빛원전에서 신광주변전소로 이어지는 기존 선로를 활용하고, 광주공항까지 약 32㎞만 새로 잇는 방식으로 공기를 단축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공사 구간을 10㎞ 또는 500m 단위로 쪼개 여러 업체가 동시에 시공하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국정감사에서 설계 착수와 입지 확정 여부를 물었을 때 "기본 검토 단계"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일정은 앞당겼는데 근거는 아직 기본 검토 수준이라는 것, 이 부분이 제가 가장 걱정스러웠던 대목입니다.
용수(用水) 문제도 비슷한 구조입니다. 용수란 산업용·농업용·생활용으로 사용하는 물 전체를 아우르는 용어입니다. 반도체 클러스터는 하루 65만t이 필요한데, 신정훈 의원은 영산강과 섬진강의 물이 그동안 대부분 농업용수로만 쓰였다며 "물이 부족한 게 아니라 산업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더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균 수량 기준으로는 공급이 가능할 수 있지만, 가뭄이 닥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반도체 공장은 물 공급량이 일시적으로 줄었다고 해서 생산량을 쉽게 조절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전력 공급 쟁점: 호남 발전량 4만 5000GWh vs 클러스터 필요량 5만 2430GWh
- 송전 현실: 현재 3~5GW가 지역 소비 못하고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중
- 전력망 공사: 345㎸ 지중송전 평균 4년 8개월, 정부 목표는 2028년
- 용수 쟁점: 하루 65만t 필요, 평상시 공급량과 가뭄 시 공급력은 다른 문제
입지 결정 과정과 앞으로 진짜 필요한 것
이번 국정감사에서 저를 또 한 번 멈추게 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윤재옥 의원이 "기업은 정부가 결정했다고 하고, 정부는 기업이 결정했다고 한다"며 호남 외 다른 후보지를 검토했는지조차 확인할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지적한 부분입니다. 실제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7월 기자간담회에서 "정부는 호남이 가장 좋다고 판단하신 것"이라며 정부가 결정하면 그곳에 짓겠다는 취지로 발언했습니다.
입지 선정(立地選定)이란 산업시설을 어디에 배치할지 결정하는 과정으로, 전력·용수·교통·노동력·지역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정부와 기업이 협의해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사례처럼 서로 상대방이 결정했다고 미루는 상황은 흔치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에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지기 쉽습니다.
물론 호남에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면 파급 효과는 상당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 제조사뿐 아니라 장비업체, 소재기업, 물류 인프라, 연구기관이 함께 들어올 수 있고, 장기적으로 지역 산업 생태계 자체가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관점에서도 의미 있는 방향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 뉴스를 보면서 가장 걱정스러웠던 건 타이밍의 문제입니다. 반도체 산업은 경쟁국의 설비 투자 속도와 기술 주기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TSMC가 새 공장을 3년 만에 완공하는 동안 우리는 전력망 공사 일정을 두고 국정감사에서 논쟁하고 있다면, 그 시간 차이가 결국 경쟁력 격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정부가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기업이 "믿고 투자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습니다. 그 간극을 좁히는 것은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정과 근거, 그리고 실행입니다. 2028년 전력 공급선로 구축 목표가 단순한 숫자 발표에 그치지 않으려면, 설계 착수 시점·입지 확정 여부·동시 시공 업체 수·가뭄 대비 용수 공급 시나리오까지 세트로 제시돼야 한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반도체 클러스터 성공 사례를 보면 부지 면적보다 기반 인프라 완성도가 먼저였습니다. 저는 이번 호남 클러스터도 결국 그 순서를 지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호남에서 전기가 남아서 수도권으로 보내고 있다는데, 그럼 반도체 공장 전력 공급에 문제없는 건가요?
A. 전기가 생산된다는 것과 반도체 공장에 안정적으로 공급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현재 호남에서 수도권으로 송전되는 3~5GW는 전력망이 부족해 지역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기를 연결하려면 새로운 345㎸ 송전선로 구축이 선행돼야 하며, 이 공사 일정이 2028년 목표에 맞게 진행될 수 있는지가 진짜 문제입니다.
Q. 반도체 공장에 물이 하루 65만t이나 필요한 이유가 뭔가요?
A. 반도체 제조 공정은 웨이퍼(반도체 기판)를 수십~수백 차례 세척하고 처리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이 과정에서 불순물이 극도로 제거된 초순수(超純水)가 대량으로 필요합니다. 단순히 공업용수를 끌어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정수 처리 시설과 안정적 공급 시스템이 함께 갖춰져야 합니다.
Q. 정부가 2028년으로 전력망 구축 일정을 앞당겼는데 실제로 가능한가요?
A. 최근 10년간 완공된 345㎸ 지중송전사업 10건의 평균 공사기간이 착공부터 준공까지 4년 8개월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빠듯한 일정입니다. 정부는 기존 선로 활용과 구간 분할 동시 시공으로 공기를 단축하겠다고 설명했지만, 국정감사 당시 설계 착수와 입지 확정이 아직 기본 검토 단계라고 답했습니다. 일정의 현실성은 앞으로 나올 구체적 계획을 보고 판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Q.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는 누가 결정한 건가요?
A.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SK그룹 측은 정부가 결정했다는 취지로 발언했고,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이라 기후부는 세부 내용을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호남 외 다른 후보지를 검토했는지 확인할 자료도 제출되지 않아, 입지 결정 과정의 투명성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습니다.
결론
이번 뉴스를 처음 봤을 때는 단순한 여야 공방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숫자를 하나씩 뜯어보고 나니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됐습니다. 반도체 공장을 지은 뒤 10년, 20년을 안정적으로 돌릴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는가. 전력망 구축 일정, 가뭄 시 용수 공급 시나리오, 입지 결정 과정의 투명성까지 이 세 가지가 동시에 해소돼야 기업이 실제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이 뉴스를 따라가며 확인한 것처럼,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패는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기반 인프라에 달려 있습니다. 정부가 "가능하다"는 선언을 넘어 설계 착수 시점, 동시 시공 계획, 가뭄 대비 용수 확보 방안을 패키지로 제시하는 것, 그것이 앞으로 지켜볼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