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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 근처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정을 마친 뒤 남는 실리콘 부산물이 그냥 폐기물로 나간다는 겁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저 안에 뭔가 다시 쓸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 정부가 정확히 그 지점을 건드리는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반도체 공정 부산물, 폐배터리, 태양광 폐패널 속 핵심광물을 회수하는 기업을 위해 규제샌드박스 문을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반도체 부산물 속에 광물이 있다는 걸 처음 실감한 날
반도체 산업 뉴스를 챙겨 보기 시작한 건 꽤 됐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공정 부산물에 핵심광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반도체를 만들 때 쓰는 스퍼터링 타깃(sputtering target)이라는 게 있습니다. 여기서 스퍼터링 타깃이란 박막 증착 공정에서 기판 위에 얇은 금속층을 입힐 때 사용하는 금속 원판을 말합니다. 구리, 티타늄, 텅스텐 같은 금속으로 만들어지는데, 공정이 끝나고 나면 다 소모되지 않은 채 폐기물이 됩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봤더니 국내에는 이 부산물을 다시 순환자원으로 전환하는 공식 기준이 아직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기술을 가진 기업이 있어도 기존 폐기물 관련 규정에 막혀 실제 재활용 공정을 돌리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이번에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특례(regulatory sandbox)는 바로 이 벽을 한시적으로 허무는 제도입니다. 규제특례란 일정 기간과 장소, 규모 안에서 새 기술을 실제로 시험해볼 수 있도록 규제 적용을 유예하는 방식으로, 안전성과 경제성이 확인되면 그 결과를 근거로 법과 기준을 고치게 됩니다.
2024년 1월 도입된 순환경제 규제특례 제도는 현재까지 63개 과제에 특례가 부여됐다고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밝혔습니다(출처: 기후에너지환경부). 이번에는 기업이 먼저 과제를 제안하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정부가 필요한 과제를 먼저 정하고 기술 보유 기업을 모집하는 기획형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신청은 2026년 9월 16일부터 10월 30일까지 받습니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정부가 먼저 "우리는 이 기술이 필요하다"고 선언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업이 들어와야 하는지도 비교적 명확해졌고, 실증 방향도 처음부터 제도 개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 반도체 공정 부산물에서 규소·구리·티타늄 등 핵심광물 회수 기준 마련
- 폐배터리·태양광 폐패널 내 자원 회수 신기술 보유 기업 실증 허용
- 지속가능항공유(SAF) 원료를 튀김부스러기 등으로 다각화하는 실증 추진
폐배터리와 태양광 폐패널, 버려지는 게 아니라 쌓이는 것
전기차를 타는 지인이 배터리 교체 비용을 알아보다가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 제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이 폐배터리 문제입니다. 전기차가 보급될수록 수명을 다한 배터리는 어디로 가는가. 직접 찾아보니 국내 폐배터리 발생량은 앞으로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었습니다(출처: 한국무역협회 뉴스).
폐배터리에는 리튬, 코발트, 니켈 같은 물질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리튬(Lithium)이란 배터리의 전하를 저장하고 이동시키는 핵심 소재로, 전기차용 배터리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핵심광물입니다. 문제는 기술이 있어도 기존 재활용 기준과 맞지 않거나 별도 기준 자체가 없어서 사업화 단계에서 막히는 기업들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규제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제도보다 빠르게 나왔을 때 생기는 구조적인 공백에 가깝습니다.
태양광 폐패널도 같은 맥락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설치된 패널들이 수명을 채우기 시작했고, 앞으로 처리해야 할 물량이 크게 늘어날 것은 거의 확실한 흐름입니다. 이미 2024년 특례 과제 중 태양광 폐패널 현장 재활용과 리튬인산철 배터리 재활용 기준 마련이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 그 방증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환경부 정책이라고 하면 보통 처리와 감량 쪽에 무게가 실린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회수해서 다시 산업 원료로 쓰겠다"는 방향이 명확했습니다. 이 차이가 꽤 중요하다고 봅니다. 단순 처리가 아니라 순환자원(circular resource)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고, 여기서 순환자원이란 폐기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거나 성분을 회수해 다시 원료 수준으로 끌어올린 물질을 뜻합니다.
순환경제가 자원 안보와 만나는 지점에서 제가 걱정하는 것들
이번 정책 방향에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런 실증사업에는 몇 가지 반복되는 함정이 있습니다. 직접 여러 산업 정책 사례를 찾아보면서 느낀 점을 솔직히 쓰겠습니다.
첫 번째 걱정은 규제를 낮추는 것과 안전 기준을 낮추는 것이 혼동되는 경우입니다. 폐배터리나 반도체 공정 부산물에는 유해 물질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규제샌드박스라는 이름 아래 실증을 허용하더라도, 작업자 안전과 주변 환경에 대한 검토는 오히려 더 촘촘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속가능항공유(SAF)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SAF(Sustainable Aviation Fuel)란 폐식용유나 농업 부산물 같은 비화석 원료에서 만드는 항공연료로, 기존 항공유 대비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내년부터 SAF 혼합 의무가 시행되는 만큼 원료 공급원을 빠르게 넓혀야 하는 건 맞지만, 튀김부스러기 수거와 품질 관리가 실제로 가능한지를 먼저 꼼꼼히 따져야 합니다.
두 번째 걱정은 실증 이후의 연속성입니다. 정부 지원이 있는 2년 안에 기술을 시험하는 것까지는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증이 끝난 뒤 상용화로 이어지려면 안정적인 폐기물 공급처, 회수한 자원의 구매처, 적정 처리 단가, 전문 인력이 모두 갖춰져야 합니다. 실증사업비 최대 1억 2,000만 원과 책임보험료 최대 2,000만 원이 지원되는 것은 시작으로서는 의미 있지만, 그 이후를 이어주는 구조가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기술이 현장에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과거 비슷한 실증사업들이 성과 보고서로 끝난 사례를 여럿 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향 자체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자원 안보와 순환경제가 실질적으로 연결되는 시점은, 폐기물이 단순 비용에서 회수 가능한 자산으로 인식이 바뀌는 순간입니다. 그 전환점을 만드는 데 이번 기획형 규제특례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정책 하나가 꽤 긴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규제샌드박스 신청은 누가 할 수 있나요?
A. 반도체 공정 부산물, 폐배터리·태양광 폐패널, SAF 원료 분야에서 핵심광물 회수 또는 자원 재활용 관련 신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대상입니다. 신청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환경기술산업 원스톱 서비스를 통해 2026년 10월 30일까지 가능합니다. 기존 재활용 기준을 따르기 어렵거나 별도 기준이 없어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라면 검토해볼 만합니다.
Q. 실증사업이 끝나면 특례가 자동으로 정규 제도로 바뀌나요?
A. 자동 전환은 아닙니다. 실증 결과를 바탕으로 안전성과 경제성이 확인되면 정부가 관련 폐기물 분류와 재활용 기준을 보완하는 절차를 밟습니다. 실증이 긍정적으로 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상용화가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며, 제도 개선까지의 시간차를 감안해야 합니다.
Q. 폐배터리 재활용이 늘면 전기차 배터리 가격이 내려갈 수 있나요?
A. 직접적인 가격 인하 효과는 단기적으로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폐배터리에서 리튬, 코발트, 니켈 같은 소재를 안정적으로 회수할 수 있다면 원자재 수입 의존도를 일부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회수 비용과 정제 품질이 얼마나 확보되느냐에 따라 실질적인 영향은 달라질 것입니다.
Q. SAF 혼합 의무가 뭔가요?
A. 지속가능항공유(SAF) 혼합 의무란 항공기 연료 중 일정 비율을 화석 연료가 아닌 SAF로 채워야 한다는 규정입니다. 국내에서는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현재 SAF 원료가 폐식용유에 집중돼 있어 공급 안정성이 약한 상황이고, 이번 규제특례는 튀김부스러기 같은 새로운 원료 가능성을 검증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결론
이번 정책을 처음 접했을 때 제가 떠올린 건 지인의 그 말이었습니다. "그냥 버려진다"는 반도체 공정 부산물. 그 안에 규소와 구리와 티타늄이 들어 있고, 기술이 있는 기업이 있고, 그런데 제도가 없어서 실증조차 못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꽤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핵심광물 확보 경쟁이 거세지는 지금, 새 광산을 찾는 것만큼 이미 쓰인 자원을 되돌리는 기술도 중요해졌습니다. 정부가 기획형 방식으로 먼저 과제를 정하고 기업을 부른 것은 그 방향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고 봅니다. 다만 실증 이후의 연속성과 안전 검증의 엄밀성은 제가 계속 지켜볼 부분입니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원스톱 서비스를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