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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뿌리산업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무슨 업종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주조, 금형, 용접, 열처리, 표면처리 같은 기술을 다루는 영세 제조업체들인데, 자동차 한 대가 나오기까지 이런 곳들이 없으면 아예 시작조차 안 된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조사 결과를 보고 나서 막연한 걱정이 꽤 구체적인 위기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업체 10곳 중 9곳이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고, 핵심 기술을 이을 후계자가 없다는 곳이 37%를 넘었습니다.

인력난, 숫자로 보면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일반적으로 중소 제조업체의 구인난은 "원래 좀 힘들지 않나" 하고 넘기기 쉽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조사 결과를 직접 들여다보고 나서 그게 얼마나 안이한 시각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공동으로 근로자 10인 미만 뿌리산업 제조업체 1만 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도시형 소공인 실태조사'에서, 필요한 인력이 3명 이상 부족하다고 답한 업체가 64.5%였습니다. 여기에 1~2명 부족하다는 응답 24.8%를 더하면 89.3%가 인력 부족 상태입니다(출처: 한국경제).
이 숫자가 왜 더 심각하게 느껴지냐면, 업체당 평균 종사자가 2.8명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직원이 셋도 채 안 되는 작은 공장에서 한 명이 빠지면 생산 자체가 흔들립니다. 사장이 기계 앞에 서야 하고, 주문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현실로 옵니다. 제가 소규모 제조 현장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사장이 영업과 생산을 동시에 소화하며 하루 12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었습니다.
고령화 문제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뿌리산업 경영자의 62.4%가 50~60대이고, 그 중 37.3%는 기술을 물려줄 후계자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걱정하는 건 단순히 사람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 경영자의 연령 구조와 후계자 부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설비 노후화도 겹칩니다. 주요 생산 설비를 15년 이상 사용하고 있는 업체가 41.9%인 반면, 5년 미만 신규 설비를 갖춘 곳은 16.6%에 불과합니다. 오래된 장비, 줄어드는 인력, 나이 드는 경영자가 한꺼번에 맞물리는 구조입니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는 굳이 통계가 아니어도 짐작이 갑니다.
- 인력 부족 업체 비율: 89.3% (3명 이상 부족 64.5% + 1~2명 부족 24.8%)
- 업체당 평균 종사자: 2.8명 — 한 명 이탈이 바로 경영 타격으로 직결
- 경영자 50~60대 비중: 62.4%, 후계자 없음: 37.3%
- 15년 이상 노후 설비 보유 비율: 41.9%
- 향후 3년 내 현상 유지 계획: 87.9% — 성장보다 버티기
암묵지가 사라지면 AI도 배울 게 없어집니다
제가 이번 뉴스에서 가장 무겁게 받아들인 부분은 사실 인력난이 아니라 암묵지(暗默知) 단절이었습니다. 암묵지란 말로 설명하거나 매뉴얼로 정리하기 어려운, 오랜 경험을 통해 몸에 쌓인 지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숙련 기술자가 기계 소리만 듣고 이상을 감지하거나, 손끝 감각만으로 수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오차를 잡아내는 그 능력입니다. 이건 책 한 권이나 동영상 강의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제조업 자동화가 진행되면 숙련 인력 의존도가 줄어들 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현장을 살펴보니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글로벌 제조업계가 인공지능 전환(AX) — 여기서 AX란 제조 공정 전반에 AI를 적용해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는 산업 전환을 의미합니다 — 과 자율제조 경쟁에 본격 돌입한 지금, 정작 AI가 학습해야 할 원천 데이터가 사람의 몸과 경험 속에 있습니다.
어떤 온도와 압력 조합에서 불량이 나오는지, 열처리 불꽃의 어떤 형태가 최적 조건인지 — 이 정보는 숙련자가 현장에 있어야 데이터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은퇴하고 사업장 문이 닫히면 데이터를 수집할 기회 자체가 없어집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국비 480억원을 투입한 '제조암묵지 기반 AI모델 개발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출처: 산업통상자원부). 숙련 제조 인력의 경험을 데이터로 보존하고 AI 학습에 활용하겠다는 방향인데, 취지 자체는 제 경험상 이보다 더 맞는 접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직원 평균 2.8명인 영세 업체가 자체적으로 데이터 수집 인력과 비용을 마련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연세대 경제학과 박경민 교수는 "인력난과 승계 단절이 동시에 진행되면 제조업 기반의 숙련 생태계(숙련된 기술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기술을 유지·발전시키는 산업 생태계)가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제가 직접 현장 이야기를 들어봐도 이 우려는 허투루 넘길 수준이 아닙니다.
결국 스마트 제조 — AI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제조 공정을 지능화하는 방식 — 로 가는 길목에서 현장의 암묵지가 끊기면, AI가 학습할 핵심 원천 데이터 자체가 소멸합니다. 화려한 AI 공장을 짓겠다고 해도 그 안에 담을 경험이 사라진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뿌리산업이 망하면 대기업 제조업에도 직접 영향이 있나요?
A. 있습니다. 자동차, 반도체, 조선, 방산 등 대부분의 완성품 제조는 뿌리산업의 주조·금형·열처리 같은 공정을 거친 부품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은 자체 내재화 능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특수 가공이나 소량 정밀 부품은 여전히 소규모 뿌리 업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납품처가 줄면 납기 지연과 부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Q. 암묵지를 AI로 대체할 수는 없나요?
A. AI가 암묵지를 학습하려면 먼저 그 암묵지가 데이터로 변환되어야 합니다. 숙련자의 작업 패턴, 센서 신호, 불량 발생 조건 같은 정보가 기록되어야 AI 모델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숙련자가 먼저 떠나버리면 학습 데이터 자체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즉, AI가 암묵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암묵지가 AI의 원재료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Q. 뿌리산업에 젊은 사람이 들어오기 어려운 이유가 뭔가요?
A. 임금과 복지 격차가 가장 현실적인 이유입니다. 개인사업체 비중이 66.7%이고 임차 사업장이 96.2%에 달하는 구조에서는 안정적인 처우나 성장 경로를 제시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더해 제조 현장 자체를 낙후된 이미지로 바라보는 시선도 진입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단순히 임금을 올리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복합적인 인식 문제이기도 합니다.
Q. 정부 지원이 실제로 영세 업체에 닿고 있나요?
A. 제조암묵지 기반 AI모델 개발 사업처럼 방향 자체는 맞는 정책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평균 종사자 2.8명짜리 업체가 자체적으로 데이터 수집 전문 인력과 AI 개발 비용을 마련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정책이 있어도 참여 문턱이 높으면 지원 효과가 영세 업체까지 내려오기 어렵습니다. 공공기관이 현장을 직접 찾아가는 방식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결론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서 제가 느낀 건 단순한 중소기업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89.3%의 인력 부족과 37.3%의 후계자 부재라는 숫자는 지금 당장 공장 가동이 힘들다는 이야기인 동시에, 수십 년간 사람의 몸에 쌓인 제조 기술 데이터가 영구 삭제될 위기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AI와 자동화가 제조업의 미래라고들 말하지만, 제 경험상 그 미래는 현장의 숙련 데이터가 살아 있어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뿌리산업을 지킨다는 건 오래된 공장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 기술, 데이터라는 제조업의 세 기둥을 지금 다시 세우지 않으면, 나중에 아무리 최첨단 장비를 들여와도 그 안에 담을 경험이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 공백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