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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얼마 전까지 반도체 뉴스를 볼 때 "가격이 올랐다"는 제목만 보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습니다.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데, 정작 업계에서는 "슈퍼사이클이 정점을 지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가격이 오르는데 왜 걱정이냐고요. 저도 처음엔 그 모순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상승 중인데 왜 둔화라 부르는가 — 숫자로 본 가격 흐름
제가 이 뉴스를 다시 꺼내 들여다본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가격이 오르는데 왜 시장이 긴장하는가"라는 의문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요한 것은 가격의 절댓값이 아니라 상승률의 기울기였습니다. 9월 PC용 더블데이터레이트4(DDR4) 8Gb D램의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26달러로 올해 1월 11.5달러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뛰었습니다. 여기서 고정거래가격이란 메모리 제조사와 대형 구매처 사이에서 장기 계약 형태로 정해지는 기준 가격을 말하며, 현물 시장과는 별도로 반도체 시장의 체력을 판단하는 데 핵심 지표로 쓰입니다.
그런데 월간 상승률을 나열해 보면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7월 14.29%였던 상승률이 8월 4.17%, 9월 4%로 두 달 연속 낮아졌습니다. 낸드플래시는 더 극적입니다. 128Gb MLC의 월간 상승률은 4월 36.29%에서 9월 0.44%까지 떨어졌습니다. 제가 직접 월별 숫자를 나열해 봤을 때, 이건 단순한 속도 조절이 아니라 엔진 출력이 확연히 줄어드는 느낌이었습니다.
낸드플래시(NAND Flash)란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는 비휘발성 메모리로, USB 드라이브나 스마트폰 저장장치, 기업용 SSD에 두루 쓰입니다. 낸드 가격의 상승세가 사실상 보합권에 진입했다는 건, 구매자들이 더 이상 "지금 안 사면 손해"라는 심리로 달려들지 않는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현물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되었습니다. 9월 말 D램 시장에서는 월말을 앞두고 구매 문의가 거의 끊기며 거래가 부진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출처: D램익스체인지). 낸드 역시 최종 수요처의 관망세가 짙어지면서 일부 제품 가격은 오히려 약세를 보였습니다. 이른바 '추격 매수', 즉 가격이 오를 것 같아 서둘러 사들이는 행동이 약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 DDR4 D램 월간 상승률: 7월 14.29% → 8월 4.17% → 9월 4.00%
- 낸드플래시 128Gb MLC 월간 상승률: 4월 36.29% → 9월 0.44%
- 9월 말 현물시장 구매 문의 급감, 일부 낸드 제품 가격 약세 전환
- PC·스마트폰 제조업체의 원가 부담 한계 도달 → 추가 가격 수용 어려워짐
제 경험상 이런 숫자 변화는 한두 달 보고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4월 36%짜리 상승률이 다섯 달 만에 0%대로 내려온 건, 아무리 봐도 단순한 조정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흐름이었습니다.
슈퍼사이클은 끝났는가 — 마이크론 실적과 삼성전자 시험대
가격 상승률 둔화가 단순한 통계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마이크론의 최근 실적입니다. 마이크론은 2026회계연도 4분기(6~8월) 기준 매출 542억3000만 달러, 조정 주당순이익(EPS) 33.42달러를 기록하며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습니다. 여기서 EPS(주당순이익)란 회사가 벌어들인 순이익을 발행 주식 수로 나눈 값으로, 기업의 수익 창출 능력을 한눈에 비교할 때 쓰이는 지표입니다.
실적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눈에 걸렸던 숫자는 따로 있었습니다. 매출 기준 어닝서프라이즈 폭이 직전 분기 31%대에서 이번 분기 약 6%로 크게 줄었다는 점입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3개 분기 동안 실적이 시장 전망을 20~40% 웃돌았던 것과 비교하면 기대치를 넘어서는 폭이 줄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즉 기업은 여전히 잘 벌고 있지만, "얼마나 더 잘 버느냐"의 폭이 좁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현상의 배경 중 하나로 장기공급계약(LTA) 확대가 꼽힙니다. LTA란 고객사가 반도체 제조사와 3~5년 단위로 공급 물량과 가격을 미리 약정하는 계약 방식입니다. 즉 현물 시장에서 가격이 급등해도 그 상승분이 즉시 기업 매출에 반영되지 않고, 반대로 가격이 내려도 일정 수익이 보장되는 구조입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생산능력의 60~70%를 이 방식으로 묶는 전략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에프앤가이드).
그렇다면 슈퍼사이클은 정말 끝난 걸까요. 저는 이 부분에서 판단을 유보하고 싶습니다. "이미 정점을 찍었다"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트렌드포스는 4분기 일반 D램 계약가격이 전 분기 대비 10~15%, 낸드플래시는 15~20% 추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마이크론의 산제이 메흐로트라 CEO 역시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2027년과 2028년에는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고대역폭메모리(HBM)입니다. HBM이란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기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게 만든 메모리입니다. AI 연산에 필수적인 부품이라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모두 HBM 생산에 가용 라인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 D램이나 낸드 공급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지고, 이것이 여전히 PC·모바일용 메모리 가격을 받치고 있는 구조입니다.
제가 이 흐름을 보며 가장 걱정스러운 건 따로 있습니다. 시장 기대가 너무 한 방향으로 쏠려 있을 때, 작은 수치 하나가 투자심리를 뒤흔드는 경우를 여러 번 봐왔습니다.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약 105조6000억 원으로 3개월 전 전망치 110조6000억 원에서 약 4.5% 하향된 것도, 그 방향이 어느 쪽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뭔가요?
A. 반도체 시장에서 수요가 공급을 장기간 크게 초과하면서 가격이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호황 구간을 말합니다. 일반적인 경기 사이클보다 훨씬 강하고 오래 이어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번 슈퍼사이클은 AI 서버 수요 급증이 주요 동력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Q. D램 가격이 오르면 PC나 스마트폰 가격도 오르나요?
A. 직접적인 연동은 아니지만 간접 영향은 있습니다. 메모리 가격이 오르면 제조업체의 원가 부담이 커지고, 이 부담이 시간이 지나 완제품 가격에 일부 반영될 수 있습니다. 다만 경쟁이 치열한 소비자 시장에서는 제조사가 마진을 줄여 가격 인상을 흡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드시 오른다"기보다는 "오를 가능성이 생긴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Q. HBM이 일반 D램과 다른 점이 뭔가요?
A. 일반 D램은 메모리 칩 하나를 기판 위에 평면으로 올리는 방식인 반면, HBM은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TSV(실리콘 관통 전극)라는 기술로 연결합니다. 덕분에 데이터를 주고받는 속도가 일반 D램보다 훨씬 빠르고 전력 효율도 높아 AI 연산용 GPU에 필수 부품으로 자리잡았습니다.
Q. 장기공급계약(LTA)이 많아지면 반도체 기업에 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
A.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LTA가 확대되면 가격이 급락해도 일정 수준의 매출이 보장되어 수익 안정성이 높아집니다. 반면 가격이 폭발적으로 오르는 시기에는 시장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묶여 있어 실적이 기대치를 크게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이번 마이크론의 어닝서프라이즈 폭 축소가 LTA 확대와 연관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결론
제가 이 흐름을 정리하면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지금은 "가격이 더 오르느냐"보다 "지금의 높은 이익이 얼마나 오래 유지되느냐"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빠르게 올라가던 가격이 이제 계단을 올라가는 속도로 바뀌었다는 것, 그 자체가 시장이 체력을 시험받는 구간에 들어섰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저도 앞으로 반도체 뉴스를 볼 때 "가격 상승"이라는 제목 하나만 보고 판단하지 않으려 합니다. 월별 상승률 변화, 고정거래가격과 현물가격의 괴리, LTA 비중, 그리고 HBM 외 일반 메모리 수급 흐름까지 함께 살펴봐야 그림이 비로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오는 삼성전자 3분기 잠정실적 발표가 이 논쟁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단순한 영업이익 숫자가 아니라 이익률의 방향성에 더 주목해볼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