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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데, 왜 주변엔 문 닫는 가게만 늘어날까요. 2025년 기준 국내 영리법인 약 104만 곳 중 무려 16만1461개가 매출 0원에 순이익도 0원 이하였습니다.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저도 '설마'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반도체 수출이 살아나고 대기업 실적이 개선됐다는 뉴스가 쏟아지는 시기와 정확히 겹치는 수치라서 더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K자형 양극화, 숫자로 보니 체감이 달랐습니다
일반적으로 경제 회복 뉴스가 나오면 '전반적으로 좋아지고 있구나'라고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번 데이터를 들여다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K자형 양극화(K-shaped polarization)라는 표현이 이번 뉴스에서 핵심 키워드로 등장합니다. 여기서 K자형 양극화란 경제 회복이 일어날 때 일부 계층이나 업종은 상향 회복하는 반면, 다른 계층이나 업종은 오히려 하락 국면을 걷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알파벳 K처럼 위쪽 선과 아래쪽 선이 갈라지는 모습을 떠올리면 됩니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이 국세청과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법인세를 신고한 영리법인 104만732개 가운데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이 모두 0원 이하인 법인이 16만1461개로 집계됐습니다(출처: 통계청). 2020년 10만7050개와 비교하면 5년 만에 50.8% 급증한 수치입니다.
이른바 '깡통법인'이라 불리는 이 법인들이 전체 영리법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5%입니다. 제가 처음 이 비율을 봤을 때는 그냥 '꽤 많네' 정도였는데, 계산해보니 법인 10곳 중 1곳 반 이상이 사실상 영업을 못 하고 있다는 뜻이더군요.
물론 이 숫자를 전부 경영 위기 기업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국세청 분석에 따르면 16만여 곳 중 13만3000개는 자산유동화전문회사(SPC), 즉 부동산이나 금융 자산을 담보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목적법인이거나, 사업 준비 중인 신규 법인, 또는 폐업 절차를 밟는 법인으로 파악됩니다. 쉽게 말해 구조적으로 매출이 잡히지 않는 법인이 상당수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 경험상 이 숫자가 마냥 안심이 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파산 신청과 폐업 법인 수치가 동시에 역대 최대를 찍었기 때문입니다.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2021년 955건에서 2025년 2282건으로 네 해 만에 약 2.4배 뛰었습니다. 올해 1~7월에만 이미 1500건이 접수됐습니다.
폐업 법인도 마찬가지입니다. 2020년 6만7547개였던 것이 2025년에는 8만5270개로 늘었습니다. 5년 사이에 약 1만7700개가 더 사라진 셈입니다.
지역별로는 서울 5만9619개, 경기 3만9250개, 인천 5954개 순으로 수도권에 깡통법인이 집중됐습니다. 부산 7367개, 전남 5478개, 경남 5435개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 매출 0원·순이익 0원 이하 법인: 2020년 10만7050개 → 2025년 16만1461개 (50.8% 증가)
- 법인 파산 신청: 2021년 955건 → 2025년 2282건 (약 2.4배 증가)
- 폐업 법인: 2020년 6만7547개 → 2025년 8만5270개 (역대 최다)
- 깡통법인 집중 지역: 서울 5만9619개, 경기 3만9250개, 부산 7367개 순
내수 침체의 악순환, 왜 쉽게 끊기지 않을까
이번 데이터를 보고 제가 먼저 떠올린 건 '왜 지금 이 타이밍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고금리 국면이 길어지면서 기업들의 금융비용 부담이 눈에 띄게 커진 시기와 정확히 맞물립니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오르면 대출 이자 부담만 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실제 영향은 그보다 훨씬 넓습니다. 금융비용이 늘면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투자가 줄면 일자리와 임금이 제자리를 맴돌고, 가계 소득이 정체되면 소비가 위축됩니다. 소비가 줄면 내수 기반 기업의 매출이 직격탄을 받습니다. 이 흐름이 한 바퀴 돌면 다시 기업의 자금 상황이 나빠지는 악순환(vicious cycle)이 됩니다. 여기서 악순환이란 한 요인이 다른 요인을 악화시키고, 그 결과가 다시 처음 요인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연쇄 반응을 뜻합니다.
부동산 개발, 신재생에너지, 게임·소프트웨어 개발, 스마트팜처럼 사업 준비 기간이 긴 업종은 더 취약합니다. 이 업종들은 매출이 발생하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는데, 그 기간 동안 임대료, 인건비, 이자 비용은 꾸준히 나갑니다. 고금리 환경에서 이 기간을 버티는 것 자체가 리스크가 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수출 회복이 조금만 이어지면 내수까지 온기가 퍼질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했는데,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반도체와 대기업 중심의 수출 호조가 협력업체나 내수 기반 중소기업의 주문 증가로 이어지려면 상당한 시간과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됐습니다.
한계기업(zombie company)이라는 개념도 이 맥락에서 중요합니다. 한계기업이란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면서도 외부 지원이나 차입으로 연명하는 기업을 가리킵니다. 이런 기업이 늘어날수록 금융기관의 부실 위험도 함께 커지고, 결국 건강한 기업의 자금 조달 환경까지 나빠질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은행).
제 생각에 가장 아쉬운 지점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자금난 때문에 충분히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입니다. 경쟁력 없는 기업의 퇴출은 시장 논리상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좋은 기술을 가졌음에도 내수 침체와 고금리의 타이밍을 맞닥뜨려 문을 닫는 기업까지 같은 선상에 놓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문진석 의원이 언급한 것처럼, 장부에만 남아 있는 법인을 정리할 제도와 함께 창업 기업이 성장 궤도에 오를 때까지 버텨낼 지원 방안이 동시에 필요한 이유입니다.
앞으로 법인 파산 추세가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될 것 같습니다. 올해 1~7월에만 1500건이 접수됐으니, 연말에는 2500건에 육박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흐름이 꺾이는지 아닌지를 지켜보면 내수 회복 여부를 가늠하는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깡통법인이 16만 개라고 하는데, 이게 다 망한 기업인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16만1461개 중 13만3000개 정도는 자산유동화전문회사(SPC)처럼 구조적으로 매출이 잡히지 않는 법인이거나, 사업을 준비 중인 신규 법인, 폐업 절차를 진행 중인 법인으로 파악됩니다. 다만 파산 신청과 폐업 법인이 동반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통계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Q. K자형 양극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가 있나요?
A. 반도체·대기업 중심 수출 지표가 개선되는 동시에 내수 기반 중소기업의 파산·폐업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그 근거로 제시됩니다. 일반적으로 수출 회복이 내수로 확산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번 데이터는 그 확산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Q. 법인 파산 신청이 늘면 일반 소비자에게도 영향이 있나요?
A. 있습니다. 기업이 문을 닫으면 직원 고용이 줄고, 납품 거래처가 대금을 받지 못하는 연쇄 피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는 상권 위축과 소비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Q. 깡통법인이 가장 많은 지역은 어디인가요?
A. 서울이 5만9619개로 가장 많고, 경기 3만9250개, 인천 5954개로 수도권에 집중돼 있습니다. 비수도권에서는 부산 7367개, 전남 5478개, 경남 5435개 순입니다. 법인 수 자체가 수도권에 많기 때문에 절대 수치는 수도권이 높지만, 지역 경제 규모 대비 비중은 별도로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
이번 데이터를 정리하면서 저는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문장을 앞으로는 조금 다르게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성장률이나 수출액 같은 평균적인 숫자가 좋아지는 것과, 실제 사업 현장에서 기업이 버티고 있는가는 다른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법인 파산 신청이 4년 만에 2.4배 늘고 폐업 법인이 역대 최다를 기록한 현실은 수출 지표 개선과 함께 봐야 비로소 경제의 실제 온도가 보입니다. 제 경험상 이 두 흐름이 동시에 진행될 때 가장 위험한 것은 '회복되고 있다'는 인식이 지원의 손길을 너무 일찍 거두게 만드는 것입니다. 앞으로 법인 파산 월별 추이와 내수 소비 지표를 함께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그 숫자의 방향이 진짜 회복 여부를 말해줄 것입니다.